뮤지컬 <이프덴>은 매 순간 나의 결정이 최고의 선택일지 고민하며 인생의 정답을 찾고 싶어 하는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혼 후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10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엘리자베스가 일상 속 작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할 때, 각각의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두 가지 인생이 동시에 펼쳐진다. <이프덴>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을 통해 인생의 희망과 좌절을 보여준다.  
 
현대 뉴욕의 감각적인 도시 풍경과 지극히 현실적인 뉴요커의 삶을 그려내어서 (성소수자는 아직 불편하긴 했지만)
공감이 되면서 작품 속 인물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마치 우리들 같아서. 
작품을 대표하는 가사로 생각되는 것은
[ "가보지 못한 길에 미련없어.
널 만나 사랑한 그 삶이면 난 충분해.
눈을 열어 앞을 봐. 한발 내디뎌. 삶은 끝나지 않았어. 
나는 걸어 이 길을. 또 걸어 갈래. 
또 다시 시작해." ]
 
사소한 선택의 길에서 두 가지 삶의 길이 펼쳐진다. 이 작품에서 삶이 갈라지는 선택의 순간은 무척 사소하다. 
케이트를 따라 재즈 공연에 가느냐, 루카스를 따라 시위에 참여하느냐 이다. 이 선택의 순간에서 
사랑이 찾아오기도 하고 아기가 찾아오기도 하고 성공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떠나가기도 하고. 
작품을 보면서 생각했다. 만약 사랑과 아기와 성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엘리자베스처럼 정답을 찾듯이 고민에 빠졌다. ㅋㅋ
그리곤 선택한 것은 나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행운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사랑도 아기도 성공도 어쩌면 내 인생에 한번 뿐인 기회일 지도 모르니까. 그만큼 사랑도 아기도 성공도 그 어느 하나 갖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위의 가사의 노래가 들렸다. 
우리는 가보지 못한 길에 미련을 두며 후회하고는 하는데
사실 아직 삶은 끝나지 않았다. 
이 길을 또 걸어가다 보면 엘리자베스처럼 사랑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

 

작품 감상 유튭 영상은

https://www.youtube.com/watch?v=skYqoZEUiwA

 

 

 

 

 

 
빅토르 위고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17세기 영국,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적인 괴물로 만들어 귀족들의 놀잇감으로 팔던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기이하게 찢겨진 입을 갖게 된 어린 그윈플렌은 매서운 눈보라 속에 홀로 버려진다.
살을 에는 추위 속을 헤매던 그윈플렌은 얼어 죽은 여자의 품에 안겨 젖을 물고 있는 아기 데아를 발견하고 우연히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를 만나 도움을 청한다. 우르루스는 평소 인간을 혐오하지만 두 아이를 거두기로 결심하고 그윈플렌의 기형적인 미소와 눈 먼 데아의 이야기를 이용해 유랑극단을 꾸린다.
어느덧 성장한 그윈플렌은 기이한 미소 덕분에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가 되고 그의 공연을 본 앤 여왕의 이복동생 조시아나는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다. 생애 처음으로 귀족인 조시아나에게 구애를 받은 그윈플렌은 고혹적인 그녀의 유혹에 순수했던 마음이 흔들리고, 우르수스와 데아는 그런 그윈플렌의 모습에 남몰래 가슴앓이 한다.
그러던 중 그윈플렌은 '눈물의 성'이라는 악명 높은 고문소로 끌려가게 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출생의 비밀인 공작의 후계자임이 밝혀진다. 
 
귀족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비웃을 때에는 무대와 음악이 영국 우화 같은 느낌이었고 (특히 여왕과 상원의원의 회의장의 모습이 위로 둥글게 마치 웃는 모습처럼 왜곡되어 생긴 것이 우화 느낌이었다.)
서민들의 진실된 사랑과 삶을 보여줄 때에는 무대와 음악이 동화 같은 느낌으로 대비되어서 작품의 분위기가 잘 전달된 명작이었다. 


웃는 남자라는 제목처럼 역설의 역설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귀족의 자제이지만 음모에 의해 납치당해 입이 찢어져 웃는 얼굴을 갖게 된 그윈플렌의 삶은 가난한 광대로 살면서 비참한 비극인 듯이 보였지만
공작으로 다시 신분을 회복하여 상원의원의 의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면서 비웃음을 샀던 그윈플렌은 거짓 논리의 귀족들을 비웃으며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진짜 웃는 남자가 된 것이다. 
마지막에 그윈플렌을 기다리면서 심장이 약해져 죽은 데아를 품에 안고 강 속으로 걸어들어가 죽어 둘은 밤하늘의 별이 된다. (이전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죽은 사람이 별이 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유치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작품에서 별이 되는 결말은 큰 감동을 주었다. 두 사람의 진실된 사랑과 행복은 거짓된 세상이 담지 못하여 하늘의 별이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뭉클했다.
 
이 작품에서 핵심되는 가사는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
그 눈을 떠
지옥 같은 가난과 고난 속에
저 벽을 무너뜨려
참된 자유만
오직 정의만
살아 숨 쉬게
거짓을 꿰뚫어 봐
이제는 그 눈을 떠 봐]

 

유튭 작품감상 영상은

https://www.youtube.com/watch?v=nsy3mPNyVLc

 

 

 

 

 

 

 

 

<노베첸토>는 이탈리아 문학의 거장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희곡을 원작으로 영화 '피아니트스의 전설'로도 제작되었다. 배에서 태어나 33년간 땅을 밟지 않은 전설적인 피아니트를 다룬다. 1인극 형태로 진행되는 작품은 오직 한 명의 배우가 11인의 인물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여기에 라이브 재즈 연주가 더해져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1900년,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버지니아호에서 태어나 버려진 노베첸토는 흑인노동자 아저씨 데니에 의해 발견되어 따뜻한 보살핌으로 자라나지만, 6살이 되던 해에 데니가 사고로 죽고난 후 그는 배 안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그가 27살이 되던 해, 트럼펫 연주자 맥스를 만나고 둘은 단짝친구가 된다. 어느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즈의 창시자인 모튼이 노베첸토의 연주 실력을 소문으로 듣고 피아노 대결을 위해 찾아오고 노베첸토는 음악과 하나되어 소름돋을 정도로 빠르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그가 압도적인 천재 피아니스트임을 증명하며 모두의 넋을 나가게 만든다. 얼마 후 그는 친구 맥스에게 배에서 내려 육지에 가겠다고 얘기하였지만 그의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진 무한한 세상을 바라보다 결국 내리지 못하고 다시 배로 돌아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맥스는 계약이 끝나 배를 떠나고 버지니아호도 쇠퇴하여 폭파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 친구 맥스는 노베첸토가 배에서 절대로 내리지 않았을 것을 직감하고 그를 찾지만 그는 혼자 남을 것을 선택하고 버지니아호의 폭발과 함께 바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피아노 현과 같은 반짝이는 줄로 꾸며진 무대가 예뻤고

한 명의 배우가 간단한 의상이나 소품으로 11명의 인물을 연출하는 것이 재밌었다. 간간이 웃기는 대사와 장면도 있었다. 

스토리에 맞게 연주되는 수준급의 재즈 피아노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황홀했고 이야기가 더 실감났다. 

 

기억에 남는 대사는 

[ "야, 이 우둔한 놈아, 인생은 무한한거야. 무한하다고."

그 거대한 바다의 외침에 인생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힘을 얻었답니다. ]

노베첸토가 친구 맥스에게 배에서 내리겠다는 결심을 말하면서 했던 짧은 이야기 중 한 부분인데 

결국 육지로 가겠다는 시도를 성공하지는 못한 노베첸토를 보면서 

88개의 피아노 건반으로 무한한 음악을 만들던 그가 배를 내려가는 사다리에서 본 세상은 수백만개의 건반으로 보였을 그 두려움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보다 넓은 세상에서 그가 또다른 행복을 연주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 

[ 그녀가 내 곁을 떠나갔을 때 난 세상 모든 여인들과 작별을 고한거야. 

그리고 자네가 떠나갔을 때 난 이 세상 모든 내 친구들과도 작별을 고했어.

이 배가 다이너마이트로 가득 찬 걸 봤을 때 난 분노와도 작별을 했어.

그리고 자네가 이 곳에 걸어들어오는 걸 봤을 땐 난 내 생에 남아있는 내 마지막 기쁨과도 작별을 했지. ]

노베첸토에게 그랬을 것처럼 나도 떠나가는 사랑, 떠나가는 친구가 있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랑과 친구들과 작별을 고하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서로에게 다정하고 오래 만나는 사이가 흔하지 않고, 또 인생을 살면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났다면 그건 행운이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만큼 친구와 연인, 가족은 다시 만들기 쉽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 감상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NmV5D67gK68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발표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이다. 
어느 날 베르테르는 자석산에 대한 인형극을 하며 신비한 모험에 들뜬 롯데의 싱그러움에 단숨에 매료되고 롯데는 시에 공감하는 베르테르에게 유대감을 느낀다. 베르테르는 롯데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지만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지고는 그녀를 잊기 위해 떠나지만 긴 여행 끝에도 롯데를 잊지 못해 발하임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결혼한 후였고 베르테르는 권총으로 자살한다. 
 
괴테의 경험담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롯데가 가꾸는 정원과 꽃시장의 꽃들 그리고 마지막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한 해바라기 밭도 너무나도 예쁘고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아름다움을 꽃으로 형상화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시를 이야기하면서 함께 외친 시인 "클롭슈토크"에 대해 검색하다가 숨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1750년 이 무렵 독일 사람들은 화창한 날 야외에서 클롭슈토크의 작품을 함께 읽는 것을 연인 관계로 들어가는 확실한 방법으로 여겼다. 그래서 썸 타던 두 사람에게 '클롭슈토크'라는 이름은 연인의 관계로 발전하고 싶다는 심정을 고백하는 일종의 암호였다고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을 시를 통해 이어준 "클롭슈토크"의 시를 베르테르는 해바라기 밭에서 자살하기 전에 읇조리는데 
아래의 이 시의 구절에서 베르테르의 롯데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 오, 황홀경이여
오, 타올라 사라질 세상의 생명들아
내 말에 귀 귀울여라
가령 말하자면
내가 죽을지라도, 죽어 사라질지라도
오로지 그대는 나와 단둘이만 함께 있어다오 ]
 
이번 작품은 무대도 예쁘고 특히 꽃들이 예쁘고
연출도 넘버도 다 좋았는데
특히 베르테르의 롯데를 향한 절절한 사랑과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슬픔을 표현하는 감정 연기가 중요한 작품으로 생각되었는데 이번 뮤지컬에서는 그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현실적으로 공감가는 가사도 있었는데
[ 너희도 짝을 찾아. 청춘이 백년인줄 알아.
아무리 봐도 눈에 안 차는 건달들뿐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딨어.
살면서 정들고 정들면서 살아가고
그걸로 성공한 결혼이야. ]

ㅋㅋ 진짜 눈에 안 차는 사람들뿐이었는데. 결혼이 눈에 차고 사랑해서 한다고 생각하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 같기는 하다. 매력있는 이성은 흔하지 않고 그런 사람은 인기가 많아서 누구나 좋아하더란 말이지.

이건 작품 감상 나누는 영상

https://youtu.be/tE-ZXmYAuHw?si=OfcYU_quFV-ZJGo1

 

 

 

여자의 집들이 파티가 끝난 후 친구가 소개한 남자와 플러팅에서 시작하여 서로 솔직한 내면을 이야기하게 되면서 불확실하지만 희망을 담은 비기닝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여자는 치열하게 살며 멋진 집을 마련하고 돈도 넉넉하지만 10년 사귄 남친과 헤어진 후 외롭고 자신이 가진 것 없는 빈껍데기 같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남자는 이혼 후 딸을 만나지 못하고 딸을 그리워하면서 다음 사랑을 시작하기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 다 사랑에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무척 솔직하다. 여자는 오늘이 배란일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아기를 낳아 키우고 싶다고 한다. 남자는 그럼 오늘 나는 정자냐고 물으며 망설인다. ㅋㅋㅋ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렸으며 여자는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사랑을 시작해보고 싶다고 하고 남자는 망설이다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을 열어간다.

첫사랑 실패 후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고 하는 두 남녀의 너무나도 솔직하고 저돌적인 사랑의 비기닝이 나는 솔로를 보는 것처럼 현실적이고 웃기고 좀 야했다. 으른들의 사랑 이야기. ㅎㅎㅎ


적벽대전을 스토리로 하는 판소리 창무극이다.
판소리로 하는 공연은 처음이었는데 실력이 다들 출중했고
창무도 멋있었다.
단지 무대가 조금 심심했다.


ㅠㅠ 영화 원스에서 느껴진 잔잔하고 로맨틱하고 아쉬움이 한껏 전해졌던 스쳐지나간 그와 그녀의 음악과 사랑의 감성은 어디로..

"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나요?
밀루유 떼베(Miluju tebe, 너를 사랑해). "
이 애처로운 사랑의 감성은 어디로..

주제곡 "Falling slowly" 의 감동은 어디로..

ㅠㅠ 억지로 웃기려는 유머코드와 라틴음악과 락음악으로 원스의 감성은 사라져버렸다..

애나의 매력을 살리지 못했다.
소품이 의자 2개라 지루했다.
두 사람이 다역을 하는데 의상이 바뀌지 않으니 처음엔 헷갈렸다.
텍스트도 임팩트가 부족했다.
아쉽다. 잘 살리면 수작이될 수 있는 컨텐츠인데..


붉은 낙엽이 떨어지는 무대가 예뻤다.
그런데 낙엽의 의미가 관계의 부식을 상징하는 거라 예쁨과 거리가 먼데
그렇다고 절망이 느껴지는 무대 장치는 아니어서 조금은 작품 분위기와 어울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주제는 의심을 의심하라. 비극인데 사실 난 의심한 사람이 이해가 되는 쪽이라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면 믿어줄 수 있는데 왜 말을 안 하고 숨기는지 답답하기도 했다.
하긴 숨기는 사람 입장에선 숨기고 싶은 비밀이거나 상처가 될까봐 말을 전할 수 없었거나 혹은 걱정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 사정이 있는거였어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서로 믿고 기다려주면 시간이 진실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다. 그는 비밀경찰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효과적인 심문 기법을 강의할 정도로 사회주의 체제 수호의 첨병 역할을 모범적으로 수행한다. 비즐러는 유명 극작가 드라이만과 배우 크리스타 커플의 감시를 맡는다. 도청을 통해 이 커플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본다. 작품 활동, 사상의 궤적은 물론 성생활 같은 사생활까지 모두 감시 대상이다.
어느날 드라이만은 동료 예술가가 권력과의 불화 끝에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에 격분해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위험에 빠트릴지 모르는 선택을 한다. 드라이만의 선택은 비즐러의 얼어붙은 양심에도 불씨를 던진다. 비즐러는 자신이 피감시자에게 동화되고 있음을 애써 부정하면서도, 드라이만의 브레히트 시집을 훔쳐 읽는 등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권력의 편에서 드라이만을 감시하던 비즐러는 어느덧 예술가의 은밀한 보호자가 된다.
통일 이후 드라이만은 책을 출간하여 비즐러에게  감사를 표하고, 비즐러가 이를 알고 감격해하는 장면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뭉클함을 안긴다. 
 
한 공간이 비즐러의 도청공간이 되었다가 드라이만의 집이 되었다가 하면서 영화에서 분리되었던 두 공간이 하나의 공간에서 연출된 것이 묘하게 재밌었고 
통일 후 도청 대상인 줄 몰랐던 드라이만이 집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전깃줄과 도청장치를 보고 자신을 보호해온 감시자의 존재를 알게 되는 장면이 극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작품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대사는
[ "여긴 내가 알던 곳이 아닌 것 같아. 하루만에 품격이 변했어. 
여기선 침묵이 살아남는 길이야. 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죽어가고 있어." ]
 
[ "내가 무서운 건 당신의 힘이 아니야. 당신의 무관심이야. 
우리는 기계가 아니잖아. 우리 한명한명은 숫자가 아니라 부품이 아니라 인간이잖아.
당신이 아무리 잘못이 없다 해도 당신이 아무리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도
이 비극의 동조자야." ]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인간의 계급이 자본가와 공장노동자로 나뉘면서 
인간을 기계 부품으로 여기고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 상황과 
국민들을 감시하면서 체제에의 순응과 침묵을 요구하던 동독을 비판하고 있다. 
 
[ "어느날 이 곡을 직접 연주해주는데 내가 온전히 이해받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거야.
이 세상에 자기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지 않을까?" ]
 
드라이만이 자살한 동료가 예전에 피아노 연주해주었던 곡을 연주하면서 
이 곡을 듣는 동안 온전히 이해받는 것 같았다고 말하면서 이야기한 대사이다. 
비즐러도 시집을 훔쳐 읽으며 인간성을 회복하기 시작하는데
예술은 인간을 이해하고 그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게 하는 품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 초 캘리포니아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
귀족의 아들인 디에고는 아버지의 지위를 이어받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있는 군사학교로 보내진다. 하지만 교육의 지루함을 이겨내지 못한 디에고는 학교를 그만두고 그곳에서 집시를 이끌며 자유로운 방랑생활을 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의 형인 라몬은 그 틈을 타 아버지를 배신하여 지하감옥에 감금한 뒤 거짓으로 그의 죽음을 선포하고, 스스로 군 통수권을 빼앗아 폭력을 일삼는 군주가 된다. 이를 견디다 못한 루이사는 디에고를 설득하여 캘리포니아로 함께 돌아온다. 한편 디에고와 함께 유랑하며 남몰래 그를 사랑했던 집시 여인 이네즈와 집시 무리들도 디에고를 돕기 위해 캘리포니아행 배에 몸을 싣는데, 어쩐 일인지 고향에 돌아온 디에고는 루이사와 사람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배신자 라몬에게 굽실거리며 중요한 고비마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이 위기 속에 정의를 구현하고 라몬 일당을 번번히 궁지에 빠뜨리는 마스크를 쓴 영웅이 출현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를 조로라 칭하게 된다. 조로와 집시들에게서 용기를 얻은 캘리포니아 시민들은 지금껏 억눌렸던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조로를 생포하려는 라몬의 전투 속에 조로는 급기야 위기에 빠지고 유일하게 조로가 디에고였음을 알고 있었던 집시 여인 이네즈가 조로를 대신하여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집시들이 캘리포니아에 온 뒤로 이네즈를 사랑하게 된 라몬의 부하 가르시아는 점차 동화되어 결국 조로와 시민의 편에 서게 되고, 가르시아의 결정적인 제보로 조로는 자신의 아버지를 지하감옥에서 구출하고 형 라몬과 최후의 결투를 한다. 

무대와 연출 좋았고
스페인 음악과 춤이 흥겨웠다. 
배우들 노래와 연기, 그리고 그 합이 좋아서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대사는
[ "무지개 돌을 주면서 니가 그랬잖아. 여기에 무지개가 들어있다고.
스스로를 믿게 만들어. 희망을 주거든. 

모든 게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 ]
 

데이비, 알란, 폴 세사람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연극이다.
서로 연결된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뒤죽박죽인 조각 이야기를 이어맞추며 사건을 이해하는 재미가 있다.
킬롤로지는 아버지께 인정받지 못하고 분노를 품은 폴이 만든 게임인데 고통스럽게 죽일수록 점수를 많이 딸 수 있다.
데이비는 자전거를 타던 소녀와 아버지 서로의 따스한 눈빛을 보고 자신은 가지지 못한 사랑에 화가 나 그 자전거를 훔쳐서 달리다가 폭력배들 차의 운행을 방해하여 납치된다.
이후 두 가지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1)데이비가 킬롤로지 레벨9 가장 높은 단계의 방법으로 폭력배에게 죽임을 당한다 (2)경찰이 데이비의 납치를 막고 삶을 이어나간다.
두가지 설정의 이야기로 인해 사건을 파악하는데 혼란이 생기는데 이게 매력이다.
후반부에 데이비의 아빠인 알란이 데이비가 죽은 원인을 게임 개발자라 생각하고 폴에게 복수하러 집에 잠입하면서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거기서 알란은 죽은 데이비가 살아있다면 어떠할지 상상속에서 그에게 삶을 부여한다. 그래서 현실은 (1), 상상은 (2)인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각자의 텍스트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질 수는 있다.

게임의 이름 ‘킬롤로지(Killology)’는 살해학이라는 뜻이다. 극작가 게리 오웬은 데이브 그로스먼의 ‘살해학’에서 영감을 받아 연극 ‘킬롤로지’를 탄생시켰다. 게임, 영화 등 일상에서 폭력을 쉽게 접한 사람들은 살인과 폭력에 거부감이 낮다는 것이 이 학문의 주장이다. 과연 게임을 모방해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한 아이들에게 책임이 있는 걸까? 폭력에 익숙해지게 만든 ‘게임’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 것일까? 를 고민하게 하는 연극이었다.

 

 
연극 "더 드레서"는 영화 <피아니스트>의 작가 로널드 하우드가 작가로 경력을 쌓기 전 실제 드레서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지방 투어 중인 가난한 셰익스피어 극단의 주역 배우이자 제작자인 노배우 그리고 16년간 그를 보살펴온 드레서 노먼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영국, <리어왕> 공연을 앞둔 무대 뒤, 첫 대사조차 생각나지 않는 선생님과 징집으로 인해 턱없이 부족한 앙상블, 공습경보마저 울리는 전시 상황에서도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스태프들은 분주하다. 극은 어수선한 시절에도 무사히 공연을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무대 뒤로 관객들을 불러 모은다. 
 
공습경보가 울리고 포탄의 파편이 떨어져 지붕이 부서지는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할일에 최선을 다하며 연극을 무대에 성공적으로 올려 관객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일과 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 있기에 서로에게 힘이 되고 희망을 싹틔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품을 대표한다고 생각되는 대사는
[우리는 지금 한 치 없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이 깨지고 문명이 위협당해도 우리는 버티고 살아 남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온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 배우들도 목숨을 걸고 또다른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무참한 상황 속에서 저희 배우들에게 진정으로 주어진 일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위대한 연극 작품 안에서 살아 숨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크리스마스 자두, 사과 & 시나몬 인퓨전
 


따끈따끈하고 매콤한 자두 향으로 빛나는 
자두, 사과 & 시나몬 인퓨전은 
향긋한 정향, 계피, 로즈힙 향으로 가득합니다. 
달콤하고 스파이시하며 적절하게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는
루비 레드 색조의 이 기분 좋은 조합은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매우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장합니다. 
 
[재료]
히비스커스, 로즈힙, 계피(12%), 정향(10%),
사과(8%), 향료, 생강(5%), 비트, 자두(4%)
 
[소감]
달콤한 향과 장미향이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직접 맡아봐야 알 정도로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데 향이 무척 매력적이다. 
찻물이 빨갛게 우러나와서 크리스마스의 빨간색이 생각난다. 
매콤하진 않지만 많이 새콤한 맛이 나고 히비스커스랑 자두 맛이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2. 살구, 꿀 & 라벤더 인퓨전
 


야생화가 풍부한 솔즈베리 평원의 꿀로 만든
이 부드러운 인퓨전은
살구와 꿀의 달콤한 향을 
차분한 라벤더와 결합하여 특색있는 차를 만듭니다. 
 
[재료]
로즈힙, 사과, 감초 뿌리(12%), 레몬 밤,
달콤한 블랙베리 잎, 레몬 껍질, 살구(5%),
라벤더 꽃(3%), 꿀 과립(3%), 살구 향료(3%)
 
[소감]
새콤달콤한 살구향에 라벤더 향이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라벤더 향이 전체 분위기를 무겁게 잡아주어 남자향수 같은 향이 난다. 
꽃에 들어 있는 부드러운 꿀의 맛에 살짝 새콤한 맛이 느껴진다. 
 
 
3. 엘더플러워, 딸기 & 로즈 인퓨전
 


영국 여름 정원의 향기와 맛에서 영감을 받은 이 인퓨전은
자연의 달콤한 맛과 꽃 향을 결합하여
화창한 날 야외에서 홀짝이는데 필수적인 차입니다. 
 
[재료]
사과, 히비스커스, 딸이 잎, 쐐기풀, 로즈힙, 
향료, 장미 꽃잎(5%), 
딸기 조각(5%), 엘더플라워(3%)
 
[소감]
장미향에 딸기향이 섞여서 난다. 
화창한 날 꽃밭이 떠오르는 향이다. 
히비스커스 때문에 빨간 색 찻물이 우러나온다.
새콤하고 딸기 맛이 조금 느껴진다. 
 
총평: 나는 히비스커스의 새콤한 맛을 안 좋아하는가 보다. 
맛보다는 향이 기분 좋았다. 
꽃에 들어 있는 은은한 꿀의 맛은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차 중에서 나의 선호도 순위를 매겨보면
살구, 꿀 & 라벤더 > 엘더플러워, 딸기 & 로즈 > 크리스마스 자두, 사과 & 시나몬 
 
 
4. 피카딜리 셀렉션 비스킷
 


초콜렛 펄 : 부드러운 초콜렛  맛이 나고 비스켓의 끝맛이 좋은데 고소한 버터맛이다. 
레몬 커드 : 레몬향이 살짝 나고 대체로 달지도 느끼하지도 않게 적당한 버터 비스켓 맛이다. 
솔티드 카라멜 :살짝 단맛을 주면서 씹히는 식감이 좋다. 비스켓에서 짠맛이 난다. 
마카다미아 너트 : 고소한 견과류 맛이 부드럽게 난다. 
프룻 앤 너트 오트 : 말린 과일 맛이 강하고 견과류 맛이 조금 난다. 
스템 진저 : 생강맛이 난다. 

총평: 비스켓이 상자 뒷면 사진 순서대로 들어있지 않아서 헷갈렸다. ㅎㅎ
비스켓에서 나의 선호도 순위를 매겨보면
마카다미아 너트 > 솔티드 카라멜 > 레몬 커드 > 프룻 앤 너트 오트 > 초콜렛 펄 > 스템 진저

고도를 기다리며를 쉽게 해석한 연극이라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제목 그대로
고도를 기다리며의 연극 배우가 연기를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무대 아래에서 대기하는 대체배우 둘의 담화였다.
분장실과 비슷한 컨셉인데 분장실보다는 스토리에 흥미가 떨어졌다.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문학적 상징이나 삶에 대한 고찰도 딱히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순재님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서 집중하기 힘들었고 중간에 졸았다..


스토리는 평범했고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는 수준높았다.
이번에도 서울시극단에서 작품 트랩에 어울리는 향수를 선보였는데
매콤한 시나몬과 꼬냑, 달콤한 호박향이 어우러져 미스터리한 느낌이 떠올랐다.
연극에서 향수회사와 콜라보하여 작품 성격에 어울리는 시향지 선물로 주는 이벤트 계속 해주면 좋겠다. 음~~ 기분 좋아.

 

 

랭보와 폴을 통해 시인이 일생에서 겪는 희열과 갈망, 고통을 엿볼 수 있었고, 나 또한 시를 지으면서 같은 감정들을 겪었기에 공감과 위안이 되었다. 

넘버의 가사가 랭보와 폴의 시였기 때문에 너무나도 좋게 마음을 울렸고

넘버의 음악이나 무대 장치, 연출 등은 평범했다. 

 

랭보가 찾아 헤매던 세상에 대한 진실. 이거 나도 찾아 헤메던 것인데.
자신이 써온 시를 치장과 거짓이었다며
아프리카로 가서 진정한 시를 쓰겠다던 랭보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들은
처절한 삶에 대한 기록이었다. 커피콩을 볶아 몇 프랑을 받았다는. 고된 노동으로 몸이 아프다는 일기. 그 어떤 거짓도 치장도 없는 글.
그리고 고백한다. 인생은 불행의 연속이라고.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거짓을 위안으로 삼고 있었구나. 인생이 고통이고 불행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구나 깨닫게 되었다. 행복이라는 단어로 얼마나 오래 나를 속여왔는지. 행복을 말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ㅎㅎ
우리는 착각과 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잘 살게 되면 행복해질까, 치열하게 일하면 행복해질까..
그러면서도 랭보는 폴이 지은 시, 소박하고 단순한 낱말들로 지은 따뜻한 사랑시를 읽고 또 읽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자연과 바람과 뜨거운 태양과 사랑은 일순간이지만 우리모두에게 허락되어 있다.

 

뮤지컬 속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랭보와 폴이 시쓰기에 몰입하기 위해 프랑스에서의 가족과 친구, 직장 등 그 모든 것을 떠나 런던 바닷가에 도착하였을 때

처음 보는 바다 풍경에 감동하며 모래사장에 나뭇가지로 두 사람이 함께 지은 시구절이 좋았다.

[ 그들은 누더기를 걸친 채 격렬하게 모험의 길을 간다.

이동수단이라곤 말라빠진 두 다리가 전부.

재산이라곤 눈동자 속에 담긴 금빛 태양이 전부. 

나는 살아있다. 참으로 착실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여기 이곳에 살아있다. ]

 

그리고 랭보가 아프리카에서 진정한 시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난 후 지은 시인 넘버의 가사가 좋았다. 

 

[ 인생은 불행이다.

쉴 틈 없는 불행의 연속이다.


온 우주를 돌고 돌아서
드디어 찾았네
희망은 저물어가고
남은 것은 끝없는 고통뿐

 

영원, 그것은 하나로 뒤섞인
태양과 바다
영원, 그것은 태양과 함께 가버린 바다

그리하여 나는 벗어난다.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그리하여 나는 끝내 날아오른다! ]

 

넘버 좋고 고흐의 일생과 감정선을 잘 표현했다.
스토리와 함께 고흐의 그림을 감상하니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고흐는 시골 목사님집 장남으로 전도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 바람은 좌절되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고흐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자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만 평생 그림이 팔리지 않았고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다.
작품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껴진 것은 무명의 설움 그리고 패배감과 불안이었다.
그럼에도 고흐의 그림에서 화가의 솔직하고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림을 그리며 행복했고 꿈을 꾸었다는 고흐의 말처럼 그림은 고흐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 같았고
그러한 고흐의 그림은 지금 우리에게도 위로를 주는  것 같았다.
난 너무 잘 그린 그림보다 고흐 그림이 좋은데
특히 구불구불한 터치선이 좋다. 개성있고 예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

오늘 감상한 그림 중에서는 이 두 그림이 너무 좋았다.
위: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아래: 별이 빛나는 밤에

 

 

 
소설 카뮈의 이방인을 연극화한 작품이다. 소설이 어렵고 해석이 다양하여 연극을 본 후에 많은 공부를 하며(논문까지 읽었다) 나의 감상을 정리하였다. 연극의 대사는 소설의 텍스트에서 중요한 문장들 위주로 구성되었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보다 구체화된 표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무대 장치는 간결함에도 비유와 상상으로 여러 장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해석이 원체 다양하여 다음은 나의 주관적인 이해와 감상이다. 
이방인의 유명한 첫 문장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가 온 것이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그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뫼르소는 첫문장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시신을 보지도 않았으며, 애인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냐는 질문에 "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답하는 등 감정에 무미건조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뫼르소의 이러한 모습은 그의 정직한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무관심하지만 그들은 다만 비난받지 않기 위해 무관심한 태도를 잘 숨길 뿐이다. 
작품에서 양로원 원장은 훈장을 통해 알 수 있듯 사회적인 관습과 관례의 상징이다. 이런 원장을 대상으로 뫼르소의 어머니는 평생 동안 종교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았음에도 그 사실을 숨기고 생전에 종교장을 치르고 싶다고 말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한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관습에 순종하며 거짓으로 자신을 숨기지만 뫼르소는 무관심한 말과 태도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이것이 뫼로소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이방인으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뫼르소의 성격은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뫼르소는 우연히 휘말린 사건으로 인해 알제인을 총으로 쏴죽이고 재판을 받게 된다. 사실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이게 된 것은 아랍인이 칼을 꺼내들었고 칼에 비친 햇빛에 눈이 부셔서 우발적으로 총을 쏜 것이라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지만
 
"햇빛이 너무 눈이 부셔 총을 쏘았다."는 뫼르소의 정직한 진술에 법정은 뫼르소가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담배를 피우며 장례 하루 후 애인과 코메디 영화를 보고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뫼르소는 이처럼 무자비한 인간이며 따라서 아랍인을 계획적으로 살해했다고 사형을 선고한다. 
뫼르소의 살인은 장례식에서의 태도와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그의 냉담한 태도를 비난하며 비합리적인 재판을 한 것이며 이것은 오히려 세계 사람들이 뫼르소에 대해, 사건의 진실에 대해 무관심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재판정에서 오가는 말에서 인간을 사회의 부품으로 여기는 것 깉았다. 사회에 유용한 인간이냐 해를 끼치는 인간이냐를 마지막 검사와 변호사의 발언에서 강조했다.
 
감옥에 간 뫼르소에게 찾아와 죄를 시인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받으라고 한 사제에게 분노를 쏟아놓은 후 죽음을 수용한 뫼르소에게 깨달음이 찾아온다. 이것이 극의 마지막 장면이다. 
 
[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괴로움을 씻어 주고 희망을 안겨 주기라도 하듯이 표적과 별들이 가득 찬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다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
 
마지막으로 뫼르소가 되뇌인 이 대사가 카뮈 철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문장이다. 그리고 해석이 너무나도 어려웠던 그래서 아직도 명쾌하지 않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 
뫼르소도 다른 사람들도 태도는 달랐지만 무관심했다.
이것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고된 일상에서 인간이 자신의 가치와 인생의 목적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자기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뫼르소는 외부 세계에서 상황에 휩쓸려 살아가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이처럼 인간이 존재의 이유나 삶의 의미를 추구하지 않을 때 삶은 우연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뫼르소의 수동적인 삶의 태도로 인한 우연들이 살인으로까지 귀결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 그가 “자넨 이제 내 친구야.”하고 말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말에 당황했다. 그는 거듭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야 그렇지.”하고 대답했다. 나로서는 그의 친구라고 해도 무방한 일이었고, 그는 정말로 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
 
위에서 뫼르소가 보이는 우정에 관한 무관심한 태도는 자기 의지에 의한 선택을 포기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뫼르소는 어차피 죽기 때문에 삶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소중하고 살면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며 주체적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으로 인해 뫼르소는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말년에 어머니가 왜 ‘약혼자’를 가졌었는지, 왜 생애를 다시 꾸며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주변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을 것이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에서 어머니는 자유로움을 느끼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 볼 마음이 생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죽음을 앞두고 깨달은 삶의 가치로 인해 뫼르소는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을 느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사람이 죽던 살던 선한 일을 하던 악한 일을 하던 아무런 관계없이 그저 그렇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의도나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인간은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서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천재지변으로 선한 사람이 죽었다면 그 사람의 죽음에 윤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뫼르소는 세계가 이처럼 우리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정해진 의미가 없으며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정해진 의미를 찾을 필요없이 의미를 창조하며 살 수 있음에 자유와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이다.  멋있다~~ 세계의 무관심은 참 다정하다. 
 
요약하자면, 
우연히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부조리들, 그 부조리에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 이방인이다. 
이건 아래 교수님의 요약이고

더 쉽게 말해본다면
뫼르소나 세상 사람들이나 다들 세상에 태어나 반복되는 일상에 아무 생각없이 우연에 휩쓸리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세상 관습에 눈치를 보며  그런척하며 사는거고 뫼르소는 관심없는 대로 정직하게 드러내며 사는데 죽음을 앞두고 유한한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고 세계가 우리에게 무관심하므로 우리는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하며 주체적으로 살 수 있구나 아!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철학. 요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6NVHPDQn8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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