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다. 그는 비밀경찰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효과적인 심문 기법을 강의할 정도로 사회주의 체제 수호의 첨병 역할을 모범적으로 수행한다. 비즐러는 유명 극작가 드라이만과 배우 크리스타 커플의 감시를 맡는다. 도청을 통해 이 커플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본다. 작품 활동, 사상의 궤적은 물론 성생활 같은 사생활까지 모두 감시 대상이다.
어느날 드라이만은 동료 예술가가 권력과의 불화 끝에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에 격분해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위험에 빠트릴지 모르는 선택을 한다. 드라이만의 선택은 비즐러의 얼어붙은 양심에도 불씨를 던진다. 비즐러는 자신이 피감시자에게 동화되고 있음을 애써 부정하면서도, 드라이만의 브레히트 시집을 훔쳐 읽는 등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권력의 편에서 드라이만을 감시하던 비즐러는 어느덧 예술가의 은밀한 보호자가 된다.
통일 이후 드라이만은 책을 출간하여 비즐러에게 감사를 표하고, 비즐러가 이를 알고 감격해하는 장면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뭉클함을 안긴다.
한 공간이 비즐러의 도청공간이 되었다가 드라이만의 집이 되었다가 하면서 영화에서 분리되었던 두 공간이 하나의 공간에서 연출된 것이 묘하게 재밌었고
통일 후 도청 대상인 줄 몰랐던 드라이만이 집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전깃줄과 도청장치를 보고 자신을 보호해온 감시자의 존재를 알게 되는 장면이 극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작품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대사는
[ "여긴 내가 알던 곳이 아닌 것 같아. 하루만에 품격이 변했어.
여기선 침묵이 살아남는 길이야. 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죽어가고 있어." ]
[ "내가 무서운 건 당신의 힘이 아니야. 당신의 무관심이야.
우리는 기계가 아니잖아. 우리 한명한명은 숫자가 아니라 부품이 아니라 인간이잖아.
당신이 아무리 잘못이 없다 해도 당신이 아무리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도
이 비극의 동조자야." ]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인간의 계급이 자본가와 공장노동자로 나뉘면서
인간을 기계 부품으로 여기고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 상황과
국민들을 감시하면서 체제에의 순응과 침묵을 요구하던 동독을 비판하고 있다.
[ "어느날 이 곡을 직접 연주해주는데 내가 온전히 이해받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거야.
이 세상에 자기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지 않을까?" ]
드라이만이 자살한 동료가 예전에 피아노 연주해주었던 곡을 연주하면서
이 곡을 듣는 동안 온전히 이해받는 것 같았다고 말하면서 이야기한 대사이다.
비즐러도 시집을 훔쳐 읽으며 인간성을 회복하기 시작하는데
예술은 인간을 이해하고 그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게 하는 품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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