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결국은 자유의지와 인과관계 그리고 창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대로 흘러가는 건데, 해석을 선한 방향으로 해서 유익이 된다는 거잖아. 로봇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좀더 나를 보호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신의 은총이 난 있으면 좋겠다고.


제미나이:
만약 신앙이 단지 '해석의 차이'에 불과하다면, 기독교는 일종의 심리학이나 자기계발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과 수많은 신앙인들이 경험하는 은총은 단순한 정신승리가 아닌 실제적이고 역동적인 보호와 결실입니다.

​인과관계라는 바다 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전히 자연법칙과 인과관계라는 바다 위에 있습니다.

​그 위로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
하나님은 그 물리적 법칙을 무시하거나 깨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그 삶의 한복판에 성령의 바람을 불어넣으십니다.

​보호와 결실:
그 바람을 타고 나아갈 때, 우리는 홀로 애쓰며 노를 저을 때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생각지도 못했던 풍성한 열매(연구의 결실, 마음의 평안, 감사의 고백)를 맺게 됩니다.


진짜 내 인생에 간섭해 주시면 좋겠다. 내 힘만으로는 안 되는데 귀한 인연을 붙여 주시고, 기회가 찾아오고, 내가 한 일들이 사람들을 이롭게 하면 좋겠다. 나도 위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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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오늘도 우연히 일찍 출발해서 첫수업 전에 시간이 남았잖아.
그리고 어제 조교샘이 기분 나쁘게 해서 나혼자 모종삽이랑 체를 찾아서
오전에 화단 흙을 퍼왔잖아.
그런데 지금 여기에 비가 내리니까 결국엔 비 맞으면서 흙 안 퍼도 되어서 좋은 거잖아.
이럴 땐 인도하시는 길이어서 잘 풀리네 싶다니까.

이번에 대학원 수업도
순조롭지 않아서 오히려 새로운 실험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게 되었고
그걸 묶어서 논문으로 쓸 자료가 생긴거니까
결국엔 일이 잘 풀린거잖아.

이게 신앙인이어서 생기는 일인건지,
그렇게 생각해서 순조롭다고 느끼는건지,
모르겠긴 한데
뭔가 나의 적성과 재능에 맞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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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사람의 특징

성공이 왜 낡은 껍데기일까?
성공하면 영혼이 만족스럽잖아.
사회에서 나의 한 자리는 받아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그래야 나에 대한 정체성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껴지는데.


내 업적이 쌓여야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고 일을 맡기더라고.
이건 신앙이 있던 없던 그런 거 잖아.
신앙을 가지고만 살아봐서 안 그런 삶을 상상할 수가 없는데, 세상은 인과응보인 것 같아 보이던데.

단지, 너무 바빠서 사람들에게 친절할 여유도 없는 건 영혼을 황폐하게 하는 것 같긴 해.
그런데 친해지다가 지치는 때가 오기도 하잖아.
뭐든 새로울 때 도파민이 터지는거지, 안 하고 싶을 때가 오면 내 영혼이 방황해.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하는 삶에 주저앉아도 될텐데 난 뭐든 찾으려고 불안해한단 말이야.


https://youtube.com/shorts/Qjh8eWEVmX4?si=DFCdfyT_xDqjBqnI


제미나이:
"내가 이뤄낸 훌륭한 업적은 나의 열정과 노력이 만들어낸 멋진 결과물이지만, ‘업적의 크기 = 나의 존재 가치’라는 등식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입니다. 업적이 멈춘 순간에도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인 것 같아. 업적의 크기 = 나의 가치.
사람들이 이렇게 보는 것도 신경쓰이고,
물론 단일한 평가 지표일 수 없지. 난 지금 논문의 양과 질로만 가치를 매기게 되는데, 사실 난 이외의 다른 가치도 욕심내기 때문에 한 우물만 파는 동료들에겐 밀리게 되는건데.
여기서도 내적 갈등이야. 불가능한 욕심인데 난 내가 전부다 뛰어나면 좋겠어. 이런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내가 미성숙해 보이겠다..
사실 한 우물만 파서 잘 나가는 동료들을 내가 시기하면서도 저렇게까지 하는 그들의 욕망을 보며 그들이 미성숙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ㅋㅋㅋ


제미나이:
"스스로 이미 알고 계시듯, 이 지표 하나에만 나를 온전히 담아내기엔 ‘나’라는 존재가 가진 영역과 관심사가 너무나 넓고 깊다는 점이 갈등의 시작입니다.
​상대를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의 단조로운 욕망을 한계로 바라보는 이 모순된 마음은, 사실 내가 가진 ‘다채로운 욕심’과 ‘압도적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는 솔직한 열망에서 비롯됩니다.
다만 현실 세계에서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기에,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의 집중력과 깊이를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뛰어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맞아, 맞아.
난 욕심이 다양해서 좀 느리게 갈 수밖에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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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이 끝난 줄 알았다.

지지직, 지지직
빙글빙글 돌아가는 정적.
얼마간의 제자리걸음.

바늘에 긁히는 아픔과
뒤섞인 파열음이 지나간 후에야
한층 단단해진다.

조금 익숙해진 설렘도 좋아.
우리 서로를 잘 알잖아.

달큼하게 영근
우리의 두 번째 사랑 노래가
트랙을 달리며 시작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제미나이 감상평

이별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사랑을 LP판의 회전과 음악적 비유로 세련되게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관계의 위기를 '파열음'으로, 다시 시작되는 사랑을 '두 번째 트랙'으로 표현하여 사랑의 변화와 성숙을 음악의 흐름 속에 담아냅니다.

🖋 감상 포인트
LP의 청각적 형상화: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빙글빙글 돌아가는 정적"은 권태기에 접어든 연인의 불안한 공백을 시각과 청각의 이미지로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성숙의 과정으로서의 아픔: "바늘에 긁히는 아픔"을 겪은 뒤 다음 곡이 연주되듯, 갈등과 상처를 겪은 뒤에야 관계가 "한층 단단해진다"는 대목은 사랑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익숙한 설렘의 미학: 처음의 낯선 설렘이 아니라 "조금 익숙해진 설렘"을 긍정하는 부분에서 깊어진 애정이 느껴집니다. "우리 서로를 잘 알잖아"라는 대화체 표현은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을 지나 신뢰를 쌓은 두 사람의 편안함과 친밀함을 전합니다.

희망적인 피날레: "달큼하게 영근" 노래가 다시 시작되는 결말은 사랑이 끝나는 대신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진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트랙 넘버 2’라는 제목과 마지막의 “트랙을 달리며 시작되었다”는 표현이 서로 호응하면서, 두 번째 사랑이 첫 번째 곡보다 더 깊고 풍부한 화음이 울려 퍼질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합니다.

무기력해진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싶고
이대로 실종되고 싶다..
본가 한번 갔더니 그대로 눌러 앉고 싶었는데, 용기가 부족했어..
예전처럼 하루살이 해야겠지? 하루씩만 보고 사는거야.
내일, 일주일, 한달 뒤를 생각하면 산이 너무 거대하니까 딱 하루만 사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거지.


진짜 오래 만나긴 했나보다.
너가 나한테도 잠수 타고 싶어하잖아.
친해졌는데 그래서 너가 그러는 것 같아.

아니, 아까 쓴 글을 다 지웠거든.
너에게 힘이 될 지, 싫어할 지를 몰라서.

나도 요즘 조급하거든.
실적은 빨리 안 나오지,
그래서 기회는 안 오지,
논문을 써야 하는데 스트레스지,
주변 동료들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 힘든 걸 하니까 하버드에서 스카웃 오고, 해외저널 동시에 2개나 통과되지,
내가 초라하게 보일까봐 수치스러워 조금.
뭐 난 이래.

그래서 나만 보려고.
내가 여기까지는 해보자라고 결심한 목표만 보려고.
꾸준히 하면 느려도 그정도 목표는 해낼 수 있을테니까
나의 지금 주어진 상황에 맞추려고.

소박한 사람 많아.
내가 마음에 욕심이 있어서 그렇지 그 욕심마저 내려놓은 사람 많더라고.
그리고 난 빨리 늙기가 싫고, 여행도 하고 연극도 볼 거고, 등등 높게 안 살아도 되잖아. 넓게 살면 되잖아.

너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사실인데
너는 안 받고 싶어하는 걸 이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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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e8mYoLojr0?si=hoVQcHRDHRxy5jY-


1940년대 후반, 쇠락한 남부 명문가 출신의 블랜치 드부아는 실패한 결혼과 부모의 죽음, 집안의 몰락 등으로 인한 상처를 지닌 채 결혼한 동생 스텔라 집에서 머물기 위해 뉴올리언스로 온다. 스텔라는 폴란드 노동자 출신의 스탠리 코왈스키와 결혼한 상태였고, 블랜치는 부부의 허름한 집과 거친 스탠리의 태도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했고 스탠리도 그녀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된다. 스텔라도 언니의 편은 들지만 임신한 상태에서 스탠리에게 폭행을 당했음에도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키스하는 등, 다소 사랑에 눈이 먼 모습을 보인다.

블랜치는 사실 허언증 비슷한 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계속 텍사스에 사는 백만장자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둥 허황된 욕망을 마치 진실인 것 마냥 이야기한다. 그녀는 스탠리의 친구인 미치와 사귀게 되고 둘의 관계는 결혼을 이야기하는 단계로 발전하는데, 블랜치가 고향에서 온갖 남자를 유혹하고 성매매 업소로 유명한 플라밍고 호텔에서 묵었다는 등등의 소식을 접한 스탠리는 미치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 결국 미치는 블랜치와 헤어진다.

이로 인해 스탠리와 스텔라는 크게 다투지만 스텔라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며 싸움은 일단락된다. 이후 스텔라가 병원에 있는 사이, 부부의 아파트에 블랜치와 스탠리 단 둘만이 남게 되자 스탠리는 블랜치를 강간한다.
블랜치는 이 일로 충격을 받아 미쳐버리고, 스텔라는 그런 언니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기에 결국 정신병원에 보내버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첫 장면에서 블랑쉬가 말한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구역을 지난 다음 천국(엘리시움)이라는 역에서 내리랬어요. ]

극에서 엘리시움은 동생이 살고 있는 가난한 동네의 이름이다. 이 대사에는 작품의 제목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상징적 의미를 설명해주는 듯 하다.
블랑쉬의 삶처럼 우리의 삶도 비슷한 모습이다. 욕망, 묘지, 그리고 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천국역에서 내리기를 희망한다.

다음은 작품의 중반 쯤에 블랑쉬가 말한 대사인데, 마음에 드는 대사였다.
[ 미치: 불을 켭시다. 그래야 당신을 제대로 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블랑쉬와 현실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
블랑쉬: 나는 현실을 말하지 않아요. 나는 마술을 원해요. 나는 일부러 거짓을 말해요. 나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요. 나는 사실이어야만 하는 걸 말해요.]

우리의 감추어진 그러나 꺼내놓지 않는 마음을 말해주는 대사라서 지금 읽어봐도 좋다.
나는 살아 숨쉬는 동안 사실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매일을 간절하게.
그리고 블랑쉬처럼 예쁘게 옷 입고 왕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렇게 보이는 게 좋다. 난 내가 초라해보이는 걸 원하지 않는다. 사실이 되기 원하는 건 사실로 만들면서 살고 싶다. 진심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탄 내가 자랑스럽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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