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자신의 지혜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보이는 말씀 선포를 통해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

하나님을 알고 증명할 방법이 세상에는 없다는 거잖아.
과학으로도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고.
맞아, 동의해.
하나님이 세상에 기적을 베풀며 나타나셔서 내가 신이니 나를 따르라고 안 그러시는거잖아.
십자가를 통한 말씀을 사람을 통해 전하며 믿는 자를 구원하겠다 하시고.
아마 사랑을 배우게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믿음을 배우게 하시고. 믿기 어려운 일을 믿으면서 전하는 게 사랑이 필요한 일이거든.
단순하게 생각하면 어릴적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그런데 사랑을 실천하는 건 좋은데
죄책감에선 벗어나고프다. 벌받기가 싫다고. 그렇게 피해를 주며 사는 건 아니란 말이야. 최선을 다하지.
그리고 성령님을 잘 모르겠어. 믿기 전과 후의 난 똑같은데.. 예전엔 그 존재를 미약하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신령하게 생각되던 꿈과 환상이 예지는 아니더라고.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것과 불분명하다는 거지.
언젠가 알게 되면 좋겠다.
두려움으로 믿는 건 별로인데 그런게 있긴 하단 말이야.
맞아, 증거와 증인으로도 믿기는 해. 그래서 희망이  있는거지.

성경은 나에게 희망이었어.
난 의식이 없는 시간이 두려웠거든.
죽음이 두렵다고. 내가 없어지는 게 두렵다는 거지.
성경은 영생을 약속하더라고. 그건 나에게 평안을 주었어.
그리고 희망도. 지구에선 가난했지만 천국에선 부유하게 살고 싶다는 염원.
성경을 이해해. 그리고 난 인간이 만든 세상보다 신이 제시하신 세상이 더 좋아. 모두가 부족하여 서로의 기여를 필요로 하는 사랑의 공동체.
각자는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모두는 완벽해지는 이상적인 원형.
그런데 난 죄책감을 느껴.
난 기회를 많이 줬다고. 싫어진 게 내 잘못만은 아니란 말이지. 싫어하지 않으려고 여러차례 알려줬다고.
성경에 비춰 볼 때 난 사랑하지 못 하는 죄인인 건 알지만
왜 사이가 틀어진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야? 오늘 목사님 말씀이 그렇잖아.
그럼 평생 아빠 미워하는 엄마도 천국 못 가?
미워하는 게 엄마 잘못만은 아니잖아. 아빠 잘못만도 아니고.
서로 안 맞을 수 있지 않아? 왜 그게 죄야?
누구도 안 미워하는 게 사람에게 가능해?
예수님 믿으면 미움이란 감정이 사라지고 천사처럼 되는 거 아니잖아.
분명 평안을 약속하셨는데 왜 내가 날 싫어하게 돼?
미워하는 감정이 들 때마다 죄책감에 휩싸이고
천국에 가지 못할까 두렵고
신의 사랑에 비하면 죄인 건 알겠지만
신처럼 안 되는 데 그게 당연한 거잖아.
나도 좋은 사람이고 싶어. 내가 가장 바라는 거야.
답을 찾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신이 구원을 선물로 주었다면
내가 못 하는 걸 강요하고는 지옥에 보내겠다고 하시진 않을텐데 말이야.
난 어떤 부분에서 오해를 하고 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o0JKhaD_OQ 

이 설교 말씀을 듣기 전에는 일한 만큼 받아야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씀을 듣고 난 후 나도 자본주의 사고에 젖어 있었구나 싶었다. 

이 사고는 근래 젊은층을 사로잡으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지금껏 버텨온 이유는 일한 만큼 받아서가 아니였다. 

일하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에게도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일한 만큼 받으면 부를 가진 사람은 더 큰 부를 벌어들이게 되는 게 시장 원리이다. 

이 원리를 벗어나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빈부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다윗은 전리품을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참여하지 않고 쉬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분배하였다. 

예수님께서 포도원 비유를 하셨을 땐 아침 일찍 온 사람이나 저녁 늦게 온 사람이나 똑같은 일당을 주셨다. 

(아침에 온 사람에게 적게 준 것이 아니라 저녁에 온 사람에게 많이 준 것이다.)

이제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를 흩는 것이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수정자본주의에서 신자본주의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복지보다는 공정에 더 치우져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정하게 한다면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데

그 원리를 알고 공정을 부르짖는지가 궁금하다. 

서민일수록 복지정책에 더 무게를 실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더 공정을 원하는 것 같아서이다. 

부를 흩는 정책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하면서 빨갱이라는 나쁜 인식을 갖는 것이 이상하다. 

원리를 파악하고 있다기 보다 프레임을 씌워서 분노를 표출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데, 아니구나. 인생의 정답은 하나님이었어. 

또다시 시작되었거든. 고통스러운 인생을 뭘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의문.

너무 달려와서일까? 이유는 모르겠어. 

기쁘지 않았고, 기쁘지 않을 걸 예감했어. 

의미가 있을 지 불분명했어. 

찬양을 틀어놓고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어. 

그러다 찬양으로 인해 하나님 품에 다시 안기게 되었는데

그때 깨달았어. 

인생의 정답은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 없이 사람의 인생은 어떤 의미도 기쁨도 가질 수 없구나. 

느껴본 자만이 알거야.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 그냥 느껴지는 것이 그렇거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것을 허상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내 마음이 울리는데. 

무는 무를 창조할 수 없거든. 

 

https://www.youtube.com/watch?v=sxmvTLUd--U 

 

[힘들 때 꺼내 먹는 성경 구절] 책작업을 위해 성경을 읽으면서 

구절을 뽑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어서요.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읽는데 

신께서 나에게 땅을 뒤흔드는 위엄으로 말씀하시는 듯 들렸어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어릴적부터 믿어온 성경이라

미지근하잖아요. 그러기 쉽죠. 

제대로 성경 일독도 못한 나를 보면서 

죽기 전에 꼭 성경은 한 번 읽고 가자 싶어서

바이블 아카데미 신청해서 강의 들으면서 성경 일독했었어요. 

그래서 평신도 선교사 자격증도 땄고요. 

 

그 이후에 또 다시 성경을 일독하고 싶었는데, 

역시 하다가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이번에 책작업하면서 신약부터 일독시작했어요. 

이번에는 책작업과 연결되어 있어서 일독을 완수할 거예요. 

쉬운성경은 처음 읽어보는데

이해가 쉬워서 마음에 더 다가왔어요. 

이해가 안 가는 구절은 주석을 찾아보고 있고요. 

 

사복음서를 읽는 막바지에 요한복음이 나오잖아요. 

마지막 부활 후 예수님 말씀을 듣는데

믿어졌어요. 

내가 마치 그 시절에 그 역사적 장소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예수님 말씀이 신적 계시로 마음을 진동시켰어요.

지금은 사도행전을 읽고 있는데

하나도 어렵지 않네요. 

어릴 적에 억지로 읽을 때에는 지명도 많고 

사람 이름도 많고 혼란스러워서 맥락을 따라 가지 못했었는데

지금 사도들과 함께 전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으로 전도하게 하신 일이

그리고 유럽의 많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믿게 된 일이

후에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일로 이어지게 되는 거잖아요. 

 

아시아는 제국시대 때 개혁 운동이 일어나면서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고요. 

지금 기독교가 온 땅에 전해지게 된 계기에 

바울을 유럽으로 전도 여행 가게 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보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울이 아시아를 가고자 하였으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유럽으로 가게 된 것이 지금의 역사를 있게 한 것이네요. 

 

2022년. 2020년 이후 전염병으로 인해 온 세상은 공포로 위축되었고

생태를 하는 사람으로서 지구 온난화는 더 많은 전염병을 예측하고

환경 보전과 질병에 대항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은 대안을 생각하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고

이를 토론하는 우리 학자들은 낙관적인 미래만을 전망하지 않죠. 

어떤 측면에선 낙관적일 수 있지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으니까요. 

획기적인 과학의 발전은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일 수 있거든요. 

특히 분자생물학은 DNA를 다루는 연구라 위험하죠. 이 분야 전공하는 사람들도 

부작용을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입장이에요. 

나비효과와 같은 거죠. 

두려워요. 

 

정치인들은 문제를 가리기에 급급하겠죠. 낙관적인 세상으로 포장하기에 바쁠테고요. 

아무리 방송이 희망적인 뉴스를 전한다 해도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은 힘든걸요. 

뉴스가 전하는 세상은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많이 다른 듯 한데...

 

전 sf 영화를 좋아해요. 

정말 소수의 상류층만 모아서 돔으로 싸인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 것 같아요.

지금 읽고 있는 김영하님의 작별인사도 그런 도시가 배경이죠.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도시 밖 사람들은 환경 오염과 전염병으로 인해 빨리 병들고 수명이 짧을 거에요. 

과학 기술은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되겠죠. 

 

지금 세대에 살고 있는 전 행운아이네요. 

물론 마스크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불안한 미래가 다가오지만요. 

그래도 어릴 적엔 자연에서 마구 뛰어 놀고

도심가에서 길거리 음식 먹고

데이트도 하고 

행복한 시대 속에 있었구나 해요. 

 

지금 소명으로 하고 있는 일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시를 통해 힐링이 되도록 책을 전달하는 것과

(읽고 감명 받았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평생하려고요.)

생태에 대한 코딩 연구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에요. 

(처음 이 말씀 들었을 땐 이해를 못 했어요. 지금은 어렴풋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고요.

생태는 환경 보전을 위해서 기초가 되는 학문이고, 

코딩은 실험이 어려운 가상 생태 실험을 시뮬레이션으로 가능하게 하여 예측과 메카니즘 설명의 역할을 하거든요. 

빅데이터, AI와 함께 앞으로 중요성이 커질 연구 분야에요. 

어려운 일이지만 재밌어요. 

코딩 공부도 친구랑 하고 있고

수학이 기반이 되어야 해서 고등학교 수학도 인강으로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식물에 대한 이해를 위해 식물 종 이름도 외우고 있고요. 

막중한 책임감으로 

오늘도 운동으로 건강 챙기면서 하루 종일 연구로 불태웠답니다.)

 

아~~~ 벌써 1시가 다 되어가네요. 

일기 쓴다고 시간 가는 줄 몰랐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나 

지금 생각해보니 

성경 읽고 감동 받아서 쓰고 있었군요. ㅎㅎㅎ

 

 

오늘 큐티 말씀을 듣다가 생각나서 기념으로 올려요.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달라고 십수년 기도하고 어느 해 그 해의 말씀으로 뽑은 구절이에요. 

 

오늘 큐티 내용은 [하나님이 지혜를 부어주시는 목적은 이것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기고 돕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생각지도 않은 방법을 떠오르게 하시고, 놀라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시고, 다른 사람들이 풀지 못할 때 이것을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주신다.]

 

맞아요. 하나님은 제가 이웃을 돕고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해 소명을 주셨고 지혜를 주셔요. 놀라운 아이디어가 자주 떠올라서 문제가 해결됩니다.  ?

 

2022 올해 뽑은 말씀도 올려보아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을 지어라고 딱딱한 열매 몇 알을 주셨어요. 꿈에서요. 전 부족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천사는 충분하다고 답했어요. 언젠가 큐티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씨와 같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때 은사을 받았구나는 생각이 들었죠. 

두 가지 소명을 받았어요. 책을 짓는 것과 코딩연구하는 것이에요. 코딩연구는 에너지를 절약해서 행복한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에 해야한다고 하셨어요. 

올해 받은 말씀 마음에 새겨 제가 받은 은사로 제가 해야할 소명을 열심히 감당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야겠어요. 

영화 '콜링'을 보게 되었다. 저작권 문제도 있고 용량이 커서 업로드가 되지 않아서 블로그에 올리지는 못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보면 공감이 가는 영화였다.

중고차딜러를 하고 있던 남주인공은 언제나 정직을 신념으로 판매를 하였고, 다른 사원들처럼 약간의 과장과 립서비스를 하지 않아서 판매실적이 저조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 중등부를 같이 다녔던 첫사랑이 엄마 차를 사기 위해 오면서 우연한 재회가 이루어졌다. 여주인공은 동남아지역에서 선교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서로 호감이 있었고 몇 번 만나던 중 갑자기 여주인공에게 일이 생겨서 급하게 출국하게 되면서 둘의 연락은 끊어졌다.

남주인공은 깐깐한 손님을 만나게 되었지만 정직한 설명으로 안내했고 뜻밖에 정직한 사원을 찾아서라는 방송프로그램에서 나온 실험팀들이어서 정직한 사원으로 방송에 소개되면서 매출 실적이 급상승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기 전부터 남주인공은 반복적인 꿈을 꾸었는데 동남아 어떤 종족의 모습, 원숭이, 초승달이 그려진 깃발에 대한 꿈이 었다. 이 꿈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던 중 첫사랑 여주인공과 차를 사러온 목사님으로부터 같은 선교단체의 팜플렛을 받았다. 남자는 선교를 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두려워하면서 고민을 하게 된다.

4개월 후 남주인공은 회사를 퇴사하고 그 선교단체에서 1년간 훈련을 받은 후 말레이시아로 선교를 떠났다. 어느 선교사님 밑에서 일을 도우며 배우던 차에 한국의 목사님으로부터 말레이시아 섬지역으로 소포전달을 부탁받았다. 8시간이나 걸리는 긴 여정이지만 소포를 전달하였고, 다시 수도로 돌아가는 길에 야시장에 들렀는데 첫사랑 여주인공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둘은 그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만남을 지속하다가 결혼을 하게 된다.

 

영화의 마직막 장면에 나래이션이 나오는데, 참 공감가는 말이였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부르심이 한 순간에 갑자기 온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하나 조금씩 말씀해주시며 우리가 그것에 순종하는지 지켜보신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순종해 나갈 때 더 큰 길을 보여주시고 바로 그런 여정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된다. 소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내가 정하고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아니라 그분께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면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한 계획하에 창조하셨다. 콜링 영화에서처럼 난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지만 이 일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전혀 모른다. 난 계획 세우는 것을 선호하는 성격이여서 그 점이 답답하고 내가 세운 계획이 번번이 무산되어 버리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삶의 길이 놀랍게도 내가 세운 계획보다 더 좋다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와 이렇게 동행하시면서 조금씩 내가 가야하는 길을 밝히 보여주신다. 성경 말씀 처럼 내 발의 등불이 되시는 분이다.

난 낮잠을 즐겨 잔다. 어느 날 잠시 눈을 감았는데, 꿈인지 생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앉아 있게 되었고 나의 손을 바라보았다. 나의 손과 팔은 투명한 젤리 같아 보였고, 혈관과 같은 선들 사이사이에 알알이 박힌 전구 같은 것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순간 영혼만 빠져나와서 앉아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앉은 채로 열려진 방의 문 사이로 부엌의 싱크대를 보았다. 이대로 영혼이 빠져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몸으로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을 떴고 누워서 옆에 있던 나의 아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영혼이 빠져나왔다고 느끼는 순간 고통은 없었고, 투명한 손과 팔을 바라볼 때 경이로운 마음이 들었다. 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했고 실제적인 느낌이었다. 꿈은 아무리 실제같아도 그 느낌이 실제와는 달라서 꿈이라는 것을 금방 인식한다. 그리고 나의 의식은 영혼에 있었지 육체의 뇌에 있지 않았다. 

난 물론 영적인 세계에 관심이 많고 이와 관련된 동영상도 즐겨보는 편이지만 이러한 경험을 겪고 싶지는 않았다. 여전히 확실하게 꿈인지 생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놀라운 경험이었고 왜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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