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카뮈의 이방인을 연극화한 작품이다. 소설이 어렵고 해석이 다양하여 연극을 본 후에 많은 공부를 하며(논문까지 읽었다) 나의 감상을 정리하였다. 연극의 대사는 소설의 텍스트에서 중요한 문장들 위주로 구성되었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보다 구체화된 표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무대 장치는 간결함에도 비유와 상상으로 여러 장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해석이 원체 다양하여 다음은 나의 주관적인 이해와 감상이다.
이방인의 유명한 첫 문장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가 온 것이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그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뫼르소는 첫문장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시신을 보지도 않았으며, 애인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냐는 질문에 "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답하는 등 감정에 무미건조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뫼르소의 이러한 모습은 그의 정직한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무관심하지만 그들은 다만 비난받지 않기 위해 무관심한 태도를 잘 숨길 뿐이다.
작품에서 양로원 원장은 훈장을 통해 알 수 있듯 사회적인 관습과 관례의 상징이다. 이런 원장을 대상으로 뫼르소의 어머니는 평생 동안 종교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았음에도 그 사실을 숨기고 생전에 종교장을 치르고 싶다고 말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한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관습에 순종하며 거짓으로 자신을 숨기지만 뫼르소는 무관심한 말과 태도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이것이 뫼로소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이방인으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뫼르소의 성격은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뫼르소는 우연히 휘말린 사건으로 인해 알제인을 총으로 쏴죽이고 재판을 받게 된다. 사실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이게 된 것은 아랍인이 칼을 꺼내들었고 칼에 비친 햇빛에 눈이 부셔서 우발적으로 총을 쏜 것이라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지만
"햇빛이 너무 눈이 부셔 총을 쏘았다."는 뫼르소의 정직한 진술에 법정은 뫼르소가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담배를 피우며 장례 하루 후 애인과 코메디 영화를 보고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뫼르소는 이처럼 무자비한 인간이며 따라서 아랍인을 계획적으로 살해했다고 사형을 선고한다.
뫼르소의 살인은 장례식에서의 태도와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그의 냉담한 태도를 비난하며 비합리적인 재판을 한 것이며 이것은 오히려 세계 사람들이 뫼르소에 대해, 사건의 진실에 대해 무관심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재판정에서 오가는 말에서 인간을 사회의 부품으로 여기는 것 깉았다. 사회에 유용한 인간이냐 해를 끼치는 인간이냐를 마지막 검사와 변호사의 발언에서 강조했다.
감옥에 간 뫼르소에게 찾아와 죄를 시인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받으라고 한 사제에게 분노를 쏟아놓은 후 죽음을 수용한 뫼르소에게 깨달음이 찾아온다. 이것이 극의 마지막 장면이다.
[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괴로움을 씻어 주고 희망을 안겨 주기라도 하듯이 표적과 별들이 가득 찬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다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
마지막으로 뫼르소가 되뇌인 이 대사가 카뮈 철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문장이다. 그리고 해석이 너무나도 어려웠던 그래서 아직도 명쾌하지 않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
뫼르소도 다른 사람들도 태도는 달랐지만 무관심했다.
이것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고된 일상에서 인간이 자신의 가치와 인생의 목적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자기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뫼르소는 외부 세계에서 상황에 휩쓸려 살아가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이처럼 인간이 존재의 이유나 삶의 의미를 추구하지 않을 때 삶은 우연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뫼르소의 수동적인 삶의 태도로 인한 우연들이 살인으로까지 귀결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 그가 “자넨 이제 내 친구야.”하고 말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말에 당황했다. 그는 거듭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야 그렇지.”하고 대답했다. 나로서는 그의 친구라고 해도 무방한 일이었고, 그는 정말로 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
위에서 뫼르소가 보이는 우정에 관한 무관심한 태도는 자기 의지에 의한 선택을 포기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뫼르소는 어차피 죽기 때문에 삶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소중하고 살면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며 주체적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으로 인해 뫼르소는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말년에 어머니가 왜 ‘약혼자’를 가졌었는지, 왜 생애를 다시 꾸며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주변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을 것이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에서 어머니는 자유로움을 느끼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 볼 마음이 생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죽음을 앞두고 깨달은 삶의 가치로 인해 뫼르소는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을 느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사람이 죽던 살던 선한 일을 하던 악한 일을 하던 아무런 관계없이 그저 그렇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의도나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인간은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서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천재지변으로 선한 사람이 죽었다면 그 사람의 죽음에 윤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뫼르소는 세계가 이처럼 우리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정해진 의미가 없으며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정해진 의미를 찾을 필요없이 의미를 창조하며 살 수 있음에 자유와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이다. 멋있다~~ 세계의 무관심은 참 다정하다.
요약하자면,
우연히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부조리들, 그 부조리에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 이방인이다.
이건 아래 교수님의 요약이고
더 쉽게 말해본다면
뫼르소나 세상 사람들이나 다들 세상에 태어나 반복되는 일상에 아무 생각없이 우연에 휩쓸리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세상 관습에 눈치를 보며 그런척하며 사는거고 뫼르소는 관심없는 대로 정직하게 드러내며 사는데 죽음을 앞두고 유한한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고 세계가 우리에게 무관심하므로 우리는 자기 삶을 스스로 설계하며 주체적으로 살 수 있구나 아!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철학. 요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6NVHPDQn8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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