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라.
내 생명 시작될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매한가지,
장차 늙어서도 그럴 것이다.
아니라면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자연에 대한 경애로 이어지기를

금빛 은빛 무늬가 있는
하늘이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 어스름의
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 밑에 깔아 줄 텐데.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기에
그대 발 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걸어다오.
그대가 밟는 것은 내 꿈이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마음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삶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이토록 어두운 밤이면

나는 그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 봅니다.

반짝이는 별들이 희미한 달에게로

물 마시러 다가올 때,

남몰래 숨은 나무 이파리들의

잎가지가 고요히 잠들 때,

바로 그때 나는 사랑도 음악도

없는 텅 빈 나를 느낍니다.

죽은 옛 시간을 천천히 헤아리며

노래하는 미친 시계 소리는

어느 때보다 더욱 멀리 들립니다.

빛나는 모든 별들보다 더욱 멀리

서서히 내리는 조용한 빗소리보다 더욱 아프게

 

과연 그때처럼 언제 한번

다시 그대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내 마음에는 무슨 죄가 있는지요?

이 짙은 안개가 걷히면

 

어떤 다른 사랑이 또 나를 기다릴까요?

그 사랑은 순수하고 조용할까요?

아, 나의 이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달의

창백한 꽃잎을 떨어낼 수만 있다면!

 

 

참으로 슬퍼할 일

너무 많아도 이제 울지 않기로 하자.

한 세상 울다 보면

어찌 눈물이야 부족할 리 있겠느냐만

이제

가만가만 가슴 다독이며

하늘 끝 맴돌다 온

바람소리에

눈 멀기로 하자.

이 가을, 자신에게

너무 혹독하게 다그치지 않기로 하자.

아니야,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기로 하자.

 

누군가는

내게서 슬픔을

 

누군가는 

내게서 기쁨을 보고가죠.

 

물은

있는 그대로 흐르고

 

풀잎은

바람에 맞춰 흔들릴 뿐인데.

내 가슴에는

정열의 가시가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것을 드디어 빼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 가슴을 느낄 수 없었지요.

 

이제 내 노래는 탄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날카로운 황금 가시여

너를 다시 한번 느낄 수만 있다면

내 가슴속에 박힌 너를."

 

과거를 놓아 주어야

우주가 당신을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슬플 땐 위로를

기쁠 땐 미소를

꺼내 줄게요.

 

그댈 위해 

준비한

내 맘 속 자판기.

봄비, 꽃비, 초록비

노래로 내리는 비

 

우산도 쓰지 않고

너를 보러 나왔는데

 

그렇게 살짝

나를 비켜 가면 어떻게 하니

 

그렇게 가만 가만

속삭이면 어떻게 하니

 

늘 그리운 어릴 적 친구처럼

얘, 나는 너를 좋아한단다.

 

조금씩 욕심이 쌓여

딱딱하고 삐딱해진

 

내 마음을

오늘은 더욱 보드랍게 적셔주렴.

 

마음 설레며

감동할 줄 모르고

 

화난 듯 웃지 않는

심각한 사람들도

살짝 간지러 웃겨주렴.

 

얘, 나도 너처럼 

많은 이를 적시는

 

조용한 노래를 부르는 

봄비가 되고 싶단다. 

 

 

시는 일종의 '유리병 편지'와 같다.

그 유리병이 언젠가 그 어딘가에,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의 해안에 가닿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시인이 유리병에 담아 띄우는 편지 말이다.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리라.

마르고 푸석푸석해져 숨 막혀 죽기보다는

내 생명의 불꽃을

찬란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

완전히 불태우리라.

활기 없이 영원히 회전하는 행성이 되기보다는

내 안의 원자 하나하나까지

밝은 빛으로 연소되는

장엄한 별똥별이 되리라.

인간의 본분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

나는 단지 생을 연장하느라

나의 날들을 허비하지 않으리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쓰리라.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

이상한 일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몹시 피곤해진다는 것,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속 생각이 모두 움츠러들어

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는 것.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 생각이 갑자기 환해져서

반딧불이처럼 빛나게 된다는 것.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

어떤 것을 볼 때 

정말로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오래동안 바라봐야 한다.

초록을 바라보면서

'숲의 봄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신이 보고 있는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땅 위를 기어가는 검은 줄기와

꽁지깃 같은 양치식물의 잎이 되어야 하고,

그 잎들 사이의 작은 고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 잎들에서 흘러나오는

평화와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눈물 흘릴 수도 있고

그가 이곳에 살았었다고 미소 지을 수도 있다.

눈을 감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도할 수도 있고

눈을 뜨고 그가 남기고 간 모든 것을 볼 수도 있다.

 

그를 볼 수 없기에 마음이 공허할 수도 있고

그와 나눈 사랑으로 가슴이 벅찰 수도 있다.

내일에 등을 돌리고 어제와 머물 수도 있고

그와의 어제가 있었기에 내일 행복할 수도 있다.

 

그가 떠났다는 사실로만 그를 기억할 수도 있고

그에 관한 기억을 소중하게 살려 나갈 수도 있다.

울면서 마음을 닫고 공허하게 등을 돌릴 수도 있고

그가 원했던 일들을 할 수도 있다.

미소 짓고, 눈을 뜨고, 사랑하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

십 대 때부터 나는 금을 찾아다녔지.

모든 산골짜기 개울마다

내가 파헤친 모래는

사막이 되고도 남았어.

 

하지만 아무 금속도 발견하지 못했어.

기껏 구리 동전 몇 개와

돌멩이, 반짝이는 뼛조각, 잡동사니뿐.

 

왔던 것처럼 나는 떠날 거야.

그러나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니었어.

 

비록 내 두 손 사이로 모래는 빠져나갔지만

모래가 내게 준 끝없는 기쁨이 있었으니

한번 시도해 본다는 것.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

종이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방에 천사가 서 있었다.

낮은 계급으로 보이는

약간은 흔한 천사.

 

넌 상상도 할 수 없어, 그 천사가 말했다.

네가 얼마나 평범한 존재인지.

네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파랑색이 가진 만 오천 가지 색조 중

단 하나만큼도

세상에 차이를 가져다줄 수 없어.

거대한 마젤란 성운의 돌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흔한 질경이 풀조차

눈에 띄지 않지만 흔적을 남기지.

 

나는 그의 빛나는 눈을 보고 그가 논쟁을,

긴 싸움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침묵 속에 기다렸다.

그가 사라질 때까지.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

마음속에 누군가를 담고 살아가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기에 젊은 날엔 그대로 하여 마음 아픈 것도

사랑의 아픔으로만 알았습니다. 

이제 그대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냅니다.

멀리 흘러가는 강물에 아득히 부는 바람에

잘 가라 사랑아, 내 마음속의 그대를 놓아 보냅니다.

불혹, 마음에 빈 자리 하나 만들고 놓고서야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나봅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놓고 기다리는 일이라서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나도 알게 되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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