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입니다. 

그대에게 보낸 말들이

그대를 다치게 했음을.

그대에게 보낸 침묵이

서로를 문닫게 했음을.

내 안에 숨죽인 그 힘든 세월이

한 번도 그대를 어루만지지 못했음을.

 

 

[당신의 사막에도 별이 뜨기를, 고도원 엮음]

소코야, 하고 나는 불렀다.

주름살투성이 속

검은 연못 같은 

그녀의 지혜로운 눈을 들여다보며.

 

아타바스카어에서는

서로 헤어질 때 뭐라고 해요?

작별에 해당하는 말이 뭐예요?

 

바람에 그을린 그녀의 얼굴 위로

언뜻 마음의 잔물결이 지나갔다.

'아, 없어.' 하고 말하며

그녀는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냥 '틀라아'하고 말하지.

그것은 또 만나자는 뜻이야.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아.

 

너의 입이 너의 가슴에

작별의 말을 하는 적이 있니?

 

그녀는 초롱꽃이나 되는 것처럼

가만히 나를 만졌다.

헤어지면 서로 잊게 된단다.

그러면 보잘것없는 존재가 돼.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을 쓰지 않아.

 

우리는 늘 네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단다.

돌아오지 않으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단다.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 길을 당신과 나란히 걸어가기를 원한다.

당신이라는 존재에 경이로워하고

당신의 재능에 놀라워하며

사랑과 빛 속에서만 당신을 바라보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비쳐 나오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

 

그리고 당신 또한 나를 

같은 눈으로 바라보기를 나는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니까.

전에 나는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당신이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나는 이제 당신보다 더 빛나고자 하는 옷을

문 앞에 벗어 놓는다.

그것은 나 스스로 만든 무겁고 불필요한 짐이었다.

당신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여전히 사랑해 주겠는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안다.

당신이 그렇게 하리라는 걸.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마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하루하루를 바쁘게 뛰어다니는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서도

대답조차 듣지 못할 만큼.

하루가 끝나 잠자리에 누워서도

앞으로 할 백 가지 일들이

머릿속을 달려가는가.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아이에게 말한 적 있는가,

내일로 미루자고.

그토록 바쁜 움직임 속에

아이의 슬픈 얼굴은 보지 못했는가.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그토록 서둘러 달려갈 때

그곳으로 가는 즐거움의 절반을 놓치는 것이다.

걱정과 조바심으로 보낸 하루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지는 선물과 같다.

 

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속도를 늦추고,

음악에 귀 기울이라.

노래가 끝나기 전에.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돈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돈의 힘을 절감하며 살지라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좌절하지는 말아다오

 

힘이 없이는 할 수 없다고

힘없는 슬픔을 절감하며 살지라도

힘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는 말아다오

 

그리하여 이 또한 잊지 말아다오

돈과 성공이 그대로 행복이 아닌 것처럼

우리 시련의 날들이 그대로 불행이 아님을

 

돌아보면 삶에서 진실로 소중한 것들은

비비람 속에서 단단한 꽃심을 키우듯

크나큰 결여와 슬픔 속에서 

더 강인한 뿌리로 살아나느니

그토록

높은 곳에서

그렇게

오래

떨어지고

추락했으니,

어쩌면

나는

나는 법을

배울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될지도.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눈물이 하는 말을 들어라

네가 아픔으로 사무칠 때

눈물이 조그맣게 속삭이던 말을 잊지 마라

눈물이 네 얼굴에 쓴 젖은 글씨를 잊지 마라

눈물은 네가 정직할 때

너를 찾아왔었다

네 마음의 우물에서

가장 차가운 것을 퍼올려

너를 위로하고

너를 씻겨주었다

네 눈물을 기억하라

눈물이 네게 고백하던 말의

그 맑은 것을 잊지 마라

 

 

내가 만약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삶은 헛되지 않을 테지요.

 

내가 만약 한 사람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면

혹은 한 사람의 고통을 가라앉혀줄 수 있다면

혹은 한 마리의 지친 울새가

보금자리에 다시 돌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내 삶은 헛되지 않을 테지요.

 

 

안개가 짙은들 산까지 지울 수야.

어둠이 짙은들 오는 아침까지 막을 수야.

안개와 어둠 속을 꿰뚫는 물소리, 새소리,

비바람 설친들 피는 꽃까지 막을 수야.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마음 챙기의 시, 류시화 엮음]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은 옷의 크기도

몸무게와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의 웃음 속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 때

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들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가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만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 갔다.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티없이 맑은 아이들의

눈빛이 아름답고

 

그 눈속에 비치는

엄마의 웃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노부부의 꼭 잡은 두 손에서

세상 모든 시름은 사라진다.

 

친구같은 모녀의 

함박웃음 속에서

행복이 넘쳐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아름답다.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의 어제이고

우리의 오늘이고

우리의 내일인 것을...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다 느낄 때

우리의 인생길도 춤을 춘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이.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 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류시화 엮음] 

길을 선택해야만 했을 때 나는 서쪽으로 난 길을 택했다.

길은 유년기의 숲에서 성공의 도시로 이어져 있었다.

 

내 가방에는 지식이 가득했지만

두려움과 무거운 것들도 들어 있었다.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그 도시의 황금 문으로 들어가리라는 이상이었다.

 

도중에 나는 건널 수 없는 강에 이르렀고

내 꿈이 사라지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나무를 잘라 다리를 만들고 강을 건넜다.

여행은 내가 계획한 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비를 맞아 몹시 피곤해진 나는 배낭의 

무거운 것들을 버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나는 숲 너머에 있는 성공의 도시를 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난 목적지에 도착했어. 온 세상이 부러워할거야!'

도시에 도착했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문 앞에 있는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목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을 들여보낼 수 없어. 내 명단엔 당신의 이름이 없어.'

 

나는 울부짖고, 비명을 지르고, 발길질을 해댔다.

내 삶은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걸어온 동쪽을 바라보았다.

그곳까지 오면서 내가 경험한 모든 일들을.

 

도시에 들어갈 순 없었지만

그것이 내가 승리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강을 건너고, 비를 피하는 법을 스스로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웠다.

때로는 그것이 고통을 가져다줄지라도.

 

나는 알았다, 삶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 이상임을.

나의 성공은 도착이 아니라 그 여정에 있음을.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류시화 엮음]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언제나

식기 전에 밥을 먹었었다.

얼룩 묻은 옷을 입은 적도 없었고

전화로 조용히 대화를 나눈 시간이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 있었고

늦도록 책을 읽을 수도 있었다.

날마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있었다.

내 생각과 몸까지도.

울부짖는 아이를 두 팔로 눌러

의사가 진찰을 하거나 주사를 놓게 한 적이 없었다.

눈물 어린 눈을 보면서 함께 운 적이 없었다.

단순한 웃음에도 그토록 기뻐한 적이 없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깰까봐 언제까지나

두 팔에 안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플 때 대신 아파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찢어진 적도 없었다.

그토록 작은 존재가 그토록 많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게 될 줄

결코 알지 못했었다.

 

내 자신이 엄마가 되는 것을

그토록 행복하게 여길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내 몸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을 갖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몰랐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감정인지 몰랐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그 기쁨,

그 가슴 아픔, 

그 경이로움, 

그 성취감을 결코 알지 못했었다.

그토록 많은 감정들을.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류시화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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