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이 단 3명으로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여자이다. 여자는 극을 설명해주면서 신병의 애인 역할을 하고 상관의 부인 역할도 한다. 말그대로 유일한 여자역을 모두 맡은 인물이다. 현대 무용같은 동작을 종종 하는데 분위기가 신비롭다. 이 연극을 독특하게 보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여자라는 존재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오키나와 섬에서 벌어진 전쟁 중 적군의 공격을 피해 거대한 나무에 올라가 2년 동안 그곳에서 지낸 두 군인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연극에서 일본이라는 언급은 없었다. 보편적인 전쟁이야기를 하려고 그렇게 연출하였다고 한다. 

나무 위에 올라간 상관과 신병은 며칠 후 망원경을 통해 적군 기지에서 축제 소리를 듣는다. 이것에 대한 설명이 극의 마지막에 나오는데 그때 전쟁이 끝난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사실을 모르고 2년동안 두 사람은 나무 위에서 지내게 된다. 

밤이 되면 적군이 버린 쓰레기에서 음식, 담배, 담요 등을 구해오고 낮에는 적군의 동향을 관찰하기도 하고 두 사람이 서로 살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무거운 상황에서 주고 받는 대사가 모순적으로 웃긴다. 블랙 코메디 장르인지 모르고 심각한 표정으로 관람하다가 관객들이 웃는 소리에 이런 분위기구나 하면서 즐겁게 웃으며 관람했다. 

2년 후 이제 나무에서 내려오라는 편지를 신병이 받고 상관에게 내려가자고 설득하지만 수치스러움에 괴로워한다.

그 두 사람은 나무 위의 군대였을까? 상관은 일본을 위해 적을 감시해야 한다며 나무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듯한 신념으로 자신을 위안하는 모습을 보였고, 신병은 상관을 따르면서도 적과 싸우지 못하고 도망쳐온 그들이 살기 위해서 한 선택이었다고 순수하게 말한다. 

전쟁이 나서 싸우는 군인이 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총알이 난사되는 현장에 뛰어 들어갈 수 있을까? 

죽음은 인간이라면 두려운 것이고, 연극에 나오는 자주 언급된 대사처럼 [누구를 위해서 전쟁을 하는가? 가족을 위해서? 애인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이런 질문을 생각해본다면, 전쟁이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누구의 이익을 위해 섬 사람들은 전쟁에 투입되었을까 하는 허망한 생각이 든다. 

실제로 오키나와 섬은 1970년대까지 미국에 양도되었다가 일본땅으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그 당시 섬 사람들의 정체성은 불분명했다고 한다. 일본땅이던 미국땅이던 섬사람들은 신병이 나무에서 내려와 섬에서 소를 치는 목동일을 계속 하면서 살았던 것처럼 일상을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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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구님께서 발언한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는데, "매체에서의 연기 스타일이 연극에서도 통하는지 알고 싶었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손석구님의 연기 스타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연극 배우보다는 드라마, 영화 배우의 연기 같다는 인상을 받긴 했다. 발성톤이 특히 그랬는데, 연극에서 매체 연기가 그렇게 어색하진 않았다. 충분히 신병의 감정과 생각을 잘 전달했다고 느꼈다. 특별히 연극에서의 연기, 매체에서의 연기를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속삭이는 연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가짜 연기를 시키는 것 같았다." 이 발언은 극 중에서 속삭인다기 보다 혼잣말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 부분을 마이크 에코 효과로 처리해서 대화와 구분시켰다. 그런데 에코 때문에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혼잣말 하는 연기를 당연히 작게 말하면 안 들리니까 크게 말하더라도 혼잣말이라는 느낌을 연기로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크 사용은 좋지 않은 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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