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모를 쓴 양복 차림의 수없이 많은 남자가 도시의 하늘을 채우고 있다. 위와 아래, 좌와 우로 캔버스 경계 때문에 사람과 건물의 일부가 잘린 모습이어서 동일한 장면의 무한한 확대를 암시한다.
(1) 왜 중산모를 쓴 남자인가? 이 모자의 의미를 화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산모를 쓴 남자는 익명의 보통 사람을 의미한다. 나는 중산모를 착용한다. 내 자신을 두드러지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모습의 수많은 사람을 등장시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나같이 동일한 복장, 특히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장 차림이다.
(2) 그림에서 또 하나 눈에 거슬리는 모습이 있다. 어느 한 사람도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뒤로 보이는 건물의 창문과 커튼도 하나같이 모두 굳게 닫힌 상태다.
(3) 왜 그림 속 인물들은 중력을 거스르고 공중에서 부유할까? 마그리트는 "나는 당신이 예상하지 못할 곳에 남자를 배치했다. 남자는 하늘에 있다"고 한다. 이것은 골콘다라는 그림 제목과도 연관성이 깊다. 화가는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하면서 "골콘다는 인도의 부유한 도시, 마법 같은 도시"라는 말을 덧붙였다.
화가가 이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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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인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은 개성과 자율성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렵다. 동일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동일한 과정을 따라 질주하는 군중의 한 부분이다.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을 여는 출발점에 서있어야 할 초등, 중등고등학생이 오직 시험성적과 대학입시라는 획일적인 목표와 경쟁과정에서 십여 년을 보내야 한다. 성인이라고 해봐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승진 사다리를 오르거나 정년 때까지 큰 변동 없이 직장에서 자리가 유지되기를 바란다. 일상에서의 목표도 대동소이하다. 대도시에 자기 소유의 집을 마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숙제다. 다양한 주체는 사라지고 사회가 강제하는 경쟁논리를 속속들이 내면화한 군중이 대신한다.
(2) 현대인은 항상 군중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역설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 전체가 경쟁 원리, 효율성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경쟁의 회오리 속으로 몰아 넣는다. 경쟁자 사이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마음을 기대하기 어렵다. 솔직한 시선 교환은 사라지고 시선이 엇갈리는 경계의 곁눈질이 남는다.
(3)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경쟁과 신분상승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살아간다. 신분상승은 빈곤한 상태에 빠진 다수의 사람이 자신의 불행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서 생긴 당연한 결과이며, 온순하게 자책하고 앉아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라고 필요한 이데올로기다. 만약 정상적인 사디리 오르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면 편법, 극단적인 경우에는 불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루려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하다못해 복권이라도 매주 사서 허황된 일확천금의 꿈이라도 마음에 품고 위안을 삼는다. 현실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땅에 붙어있지만, 정신은 도시의 공중 위에서 정처를 찾지 못하고 떠다닌다.
출처 : 생각의 미술관 (박홍순) - 관계를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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