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는 말만 듣던 데스노트. 만화도 영화도 못 봤었는데, 그것보다 뮤지컬로 보고 싶었어요. 
내용을 모르고 봐야 더 감동적으로 볼 것 같아서요.

인터미션 때 찍었어요.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보이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었는데,
같이 관람했던 배우분이 아마 나루토가 데스노트에 이름을 쓴 다음에 사망하는 시간인 40초를 의미하는 듯 하다고 하셨는데 오! 그런 것 같더라고요. 
이 뮤지컬에서 인상 깊었던 건 무대의 천장, 전면, 바닥의 삼면에서 나오는 영상이 공간감을 준다는 거에요. 
데스노트의 장면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어요. 
 

 
첫장면이네요. 나루토가 법은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고 노래하는 부분이에요. 
나루토는 데스노트에 범죄자 이름을 적고 살해하죠. 
그런데 자신을 수사하기 시작하자 수사관들을 죽이잖아요. 
그때부터 자기 합리화와 신이 된 듯한 오만함에 빠지게 된 듯 해요. 
그리곤 자신의 정체를 하나씩 파고드는 탐정 엘을 죽이려고 두뇌 싸움을 하기 시작해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일의 방해꾼들은 범죄자가 아니지만 죽여야 된다고 생각하나 봐요.
 

 
엘이 굉장히 매력있는 캐릭터에요. 생각할 때 꼭 사진의 저 자세에요. 
자주 맨발로 다니고요. 천재느낌 나요. 전 귀여운 천재를 좋아해서 모범생 나루토보단 엘에 사로잡혔어요.
 
마지막 대사가 이 작품에 깔린 철학을 압축한다 생각했어요.
[아무 의미도 없어.
아무 것도 남지 않아. 
이런 게 제일 재미없어.]
 
검은 사신 류크가 데스노트를 지상에 던진 건 쓰고 죽이고 쓰고 죽이는 일상이 지루해서
인간과 게임을 하면서 재밌고 싶어서거든요. 
나루토가 처음에 정의를 지킨다는 이유로 범죄자를 죽이지만,
류크는 말해요. 사신은 심판하지 않는다고요. 어떤 이유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게 아니라고요.
현실을 생각해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 것 같아요.
악인이 수명을 단축하는 일도 있고, 반면 악인이지만 오래 사는 일도 있으니까요. 
아마 권력을 쥔 악인이 잘 먹고 오랫동안 잘 사는 현실을 꼬집은 것 같아요. 
 
그래서 나루토가 악인을 죽이는 게 의미없다고 말해요. 
사람이 죽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는 철학인거죠. 
마지막에 나루토는 하얀 사신 렘을 이용해서 엘을 죽이고는
이제 정의를 구현하는 신이 되고자 하는 순간 류크가 데스노트에 나루토 이름을 써서 죽여버려요.
참 시니컬하고 허무하죠. 
류크는 지금껏 재밌었는데 이젠 재미가 없어졌다고 말해요. 
그쵸.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으니까. 인간은 죽으니까.
 
나루토는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범죄자들도 그랬을 텐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심판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아! 마지막 대사이야기를 하려다가 이렇게 말이 길어졌네요. 
이렇게 나루토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아무 의미도 없었고 결국엔 재미없는 이벤트로 마무리 되었어요. 
 
전 사후에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지만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과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은 흥미로왔어요. 
그리고 류크를 동정했고 류크가 사람을 위해 희생했던 렘의 마음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면 그토록 허무하고 재미없게 삶을 느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삶은 소소하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헌신이잖아요. 
나로 인해 누군가가 용기를 얻어 일어서고, 슬픔에서 벗어나고, 그렇게 손을 잡아 일으켜 주는 행동은
아무리 작은 선행이어도 생명을 살리는 건 숭고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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