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뉴저지 주 어느 소도시. 대형마트 직원으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국계 입양아 출신 수아. 유일한 취미인 유원지 구경을 하던 중 회전목마를 타고 나타난 수상한 노인 네불라를 만난다. 수아를 사진작가로 오인한 네불라는 “진짜 내 모습을 남기고 싶다”며 수아에게 촬영을 부탁하고, 수아는 대충 찍고 공돈을 벌 생각에 이 의뢰를 받아들인다.
촬영이 진행되며 네불라는 무명 배우에서 파라디수스 공화국의 독재자 ‘미토스’의 대역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런 그를 처음엔 경멸하듯 바라봤던 수아는 양부모를 대신해 아픈 동생을 돌봐야 했고, 지금도 마트에서 누군가의 대체 인력으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네불라에게 투영한다.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누군가의 ‘대역’과 ‘대리’라는 비슷한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은 상대를 거울 삼아 자신과 마주한다.
사회 속에서 주체성을 상실한 개인의 삶과 회복을 블랙코미디의 문법으로 풀었다. 작가는 "'내가 이 사회 안에서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작품"이라며 “‘주체적이지 않다는 자각이야말로 주체성 회복의 시작’이라는 책(김민섭 <대리사회>)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네불라는 독재자의 네번째 대역배우로 흉내를 잘 내어서 선거유세를 하는 역을 맡았다. 혁명으로 인해 독재자는 자살하고 관련자들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데, 거짓이 오가는 속 네불라는 자신이 대역배우를 했다는 진실을 말하고 4년간 투옥된다. 네불라는 감옥에서 신문과 책들을 보면서 비로서 자신이 대역배우를 한 사람이 민중을 학살하고 크나큰 만행을 저지른 독재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수아에게 인생 사진을 찍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은 네블라는 마지막 부탁을 한다. "나를 판단해 줘요." 그는 대역 배우 시절을 떠올리며 “끝이 안 좋았어도 그 순간만큼은 소중해서 버릴 수가 없는 기억”이라고 ‘죄책감과 억울함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스스로를 혼란스러운 존재로 여긴다. 
수아는 네불라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입양을 와서 장애를 가진 동생을 돌보며 가족이 될 수 있었던 아이. 굿걸이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서 더 열심히 동생을 돌봤던 수아는 생일날 동생을 재우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동생이 걱정되어 일찍 집으로 향하다 불에 타고 있는 집을 목격하게 된다. 수아를 탓하는 양아버지의 모습에 가출을 한다. "모두를 원망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다들 애매했으니까."
수아는 네불라에게 그동안 찍은 사진을 건네주었고, 네불라는 그 사진들을 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이 뮤지컬의 대표 넘버를 다같이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h3twea2D1iQ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는 계속 쉼 없이
밀려오는데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오른다

가끔은 저 파도가 너무 거세
뛰어오를 힘조차 없을 때에는
크게 숨을 들이 마쉰 채
바다 속에 잠겨 숨을 참는다

다시 파도가 잠잠해질 때까지
다시 올라갈 힘이 생길 때까지]
 
네불라의 말처럼 네불라는 나쁜 의도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다. 어쩌면 시키는대로가 아닌 좀더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면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늘 현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끝이 안 좋았어도 소중한 네불라의 인생. 
모두를 원망하고 싶지만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수아의 인생. 
이것이 우리들 인생의 모습일 것이다. 
가슴을 치며 울부짖으며 넘버를 부르는 수아와 울지도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넘버를 부르는 네블라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차올랐다. 
바다 속에 잠긴 듯 답답한 인생을 살면서도 
힘을 다해 뛰어올라 크게 숨을 들이마실 수 있기에 
우리는 살아내는 것이다. 
딱 그 정도 깊이의 바다가 우리들의 인생이기에 
힘을 내면 숨을 들이마실 수 있기에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내고 있기에
서로의 이야기를 심장으로 들어주며 보듬어주는 따뜻한 사회였으면 한다. 
한번 더 관대하게, 한번 더 친절하게. 
 
주체성에 대해 생각을 덧붙이자면
더나은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도 주체성일 것이고
네블라처럼 지나간 인생을 소중했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수아처럼 용서하고 다시 동생을 찾아간 용기도 주체적인 선택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숨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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